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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헌단] [글로벌사회공헌談] 내 마음에 꽃이 되어 피어난 네팔봉사단 활동

2016-10-24l 조회수 4120





내 마음에 꽃이 되어 피어난

- 2016 하계 네팔봉사단 활동 수기 -

 

 

 

시작부터 감사했다. 몇 년만 지나면 불혹(不惑)의 나이인 나에게도 해외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다. 학부생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해외봉사활동을 대학원생에게도 문을 연 것은 정말 신의 한 수가 아닐까. 대학원생의 경험과 학부생의 열정이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낼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세대(?) 간의 교류는 갈등이든 화합이든 어떤 형태의 결과를 가져온다. 사실 글로벌사회공헌단에서 모집한 여름 네팔봉사단에 지원했을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설마 진짜로 대학원생을,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을 뽑아줄까라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네팔로 떠나는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나이와 전공을 떠나 우리는 하나의 팀으로 변화해갔다. 이번 2차 네팔봉사단의 역할은 작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을 음악과 미술 수업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치유의 대상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는 왜 네팔을 선택했는가? 돌이켜보면 어디를 가든 우리가 현지인에게 큰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과 며칠 밖에 되지 않는 기간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움을 주기에 앞서 그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말이다. 결국 네팔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컸다. 히말라야를 품은 그 나라는 어떤 곳일까? 지진 피해를 입은 후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와 같은 질문이 나를 네팔로 이끌었다. 8월 15일부터 24일까지 8박 10일이라는 전체 일정의 하루 하루는 정말 길고 고난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여 오후까지 일정을 마친 후 저녁에는 매일 피드백 회의를 하고, 다음 날 일정을 준비하는 하루의 여정은 무척 피곤했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체력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 하루는 네팔 아이들의 웃음, 우리 단원들 각자의 땀방울과 열정이 모여 완성된 예술품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되어 내 마음 속에 차곡 차곡 쌓여 갔다.


서로 다름을 경험하고 조화시키는 '살아있는 수업'

때로는 각자 생각의 차이 때문에, 또는 네팔 현지인들과의 소통 문제로 단원들 사이에 아주 사소한 갈등도 있었고 괜한 짜증이 나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조차 다양한 연령과 성장배경 및 전공으로 구성된 단원들 간의 ‘서로 다름’을 경험하고 그것을 조화시키는 ‘살아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팀과 네팔 현지인들 간의 소통 문제도 비슷하다. 어떤 일이든 신속하게 완수하는 것에 익숙했던 우리였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매몰차게 몰아붙이지 않고 여유롭게 일하는 네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용납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관점에서 그들은 너무 쉽게 평가하곤 했다. ‘네팔 사람들은 일을 왜 이렇게 못 할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맞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네팔이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며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일 중심의 삶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살아가며 여유를 갖는 그들이 대단해보였다. 빈곤한 것은 우리였다.

 

중증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의 꿈 "저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네팔 현지에서의 봉사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라고 내게 묻는다면 그 순간은 “산지바니(Sanjiwani) 학교”에서의 수업이다. 나는 이틀 동안 음악 팀에 소속되어 음악 수업을 보조했다. 이틀 동안 담당했던 학급에는 최소한 2~3명의 아이들이 앞을 거의 보지 못하는 중증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악보나 칠판을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듣는 것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아이들과의 수업은 쉽지 않았다. 영어조차 잘 통하지 않았기에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는 그 아이들도 함께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노력했다. 비록 악보를 보지 못해 가사를 읽을 수 없지만 내 목소리를 듣고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 그 중 한 학생에 내게 했던 말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이 학생은 내게 조용하게 속삭였다. “저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예요.” 꿈... 비록 현실적인 어려움이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망각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지극히 냉정한 현실에 기반한 합리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었고, 그 학생의 한 마디는 그런 내 마음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어 주었다.

어느덧 경제적 위상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 있는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네팔 사람들의 생활은 매우 궁핍하다. 기본적인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도 매우 열악하다. 괜찮은 숙소라고는 하지만 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끊긴다. 거리는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산이 많아 공기가 매우 좋을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매캐한 매연과 먼지는 네팔에 도착한 첫 날부터 내 코를 괴롭혔다. 작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붕괴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방치된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 또한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오히려 소득이 높은 우리가 기계의 부속품처럼 소소한 행복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우리의 기준에서 평가하려고 했던 나의 왜곡되고 우월한 시선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삶도 옳거나 틀리지 않다. 단지 조금 다르고 약간 불편할 뿐이다. 네팔봉사단에서의 경험은 내 삶을 돌이켜보는 기회였기에 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한 글로벌사회공헌단에게도 큰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기대감, 고마움, 미안함이 교차했던 열흘 

산지바니 학교에서 모든 봉사활동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날 우리를 배웅해주었던 꼬마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전세버스를 타고 떠나는 우리를 아이들은 멀리까지 나와 버스 옆을 달리며 배웅해 주었다. 그 모습이 정말 고마워서 손을 흔들며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이라는 거창한 명목으로 우리는 그곳을 방문했지만, 솔직히 우리는 잠깐만 머물다 정만 주고 떠나버렸기에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다시 오겠다는 말도 못하고 떠나야 하는 현실이 야속했다. 기대와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의 감정이 교차했던 열흘 동안의 꿈만 같았던 네팔 여정이 끝났다. 네팔봉사단의 활동은 끝났지만 그 동안 함께 했던 봉사단원들과의 추억, 그리고 현지에서 느꼈던 감정들은 어느덧 내 마음에 꽃이 되어 자라고 있다. 네팔 아이들에 내게 주었던 것처럼, 나 또한 내 마음 속에 핀 꽃을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SNU학생공헌단 글로벌봉사단 네팔봉사단 = 장성일 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