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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헌단] <르포> 서울대-해비타트 봉사단, 필리핀 태풍피해의 현장 속으로 가다

2016-08-19l 조회수 5582





<르포> 서울대-해비타트 봉사단, 필리핀 태풍피해의 현장 속으로 가다






한순간에 잃어버린 보금자리, 필리핀 반타얀


2013년 태풍 하이옌은 필리핀 세부 반타얀 일대지역을 순식간에 소거해버렸다.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주민들은 절망했고, 그들만의 힘으로 삶의 터전을 다시 재건하는 것은 요원했다. 지난 3년간 수많은 봉사, 자원단체들이 이 일대를 찾았고, 그 결과 현지주민 중 일부는 원래 그들의 집보다 더욱 튼튼한 집을 갖게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주민들은 삶의 기본권인 주거권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해비타트의 눈에 펼쳐진 반타얀


이번 서울대-해비타트 봉사단은 실제 공사현장에 단원들이 참여해 이들의 상황을 개선하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자, 지난 8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흘간 파견되었다. 후덥지근한 습기가 세부공항 게이트를 나선 이들의 몸을 감싸는 새벽 1시의 세부공항, 늘어진 야자수, 낯선 문자와 언어, 이국의 풍경을 지나며 단원들은 저마다의 상념에 빠져든 표정을 한 채 숙소로 향했다.

 


목적지인 반타얀 섬은 세부공항에서 차로 3시간, 배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섬은 규모가 아주 작은 섬이기 때문에 식량 공급을 위해 파도가 높아도, 태풍이 불어도 하루에 한 번은 식량공급을 위해 꼭 배가 다닌다고 한다. 3년 전 대부분의 생의 흔적들이 사라진 그곳을 단원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보았을까. 그 그림이 어떻든 간에, 단원들의 눈 앞에 펼쳐진 반타얀은 영락없는 휴양지의 모습이었다.

해변가에서 뛰노는 아이들, 관광객들의 숙소로 보이는 순백의 그리스식 건물. 이 자그마한 섬은 도대체 자신의 몸 속 어느 곳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꼭꼭 숨기며 우리를 맞은 것일까. 반타얀에서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 집을 짓는 이유

 

 

반타얀의 숙소에서 15분 정도 소요되는 공사현장을 처음 방문한 것은 세 번째날 부터였다. 정돈된 거리와 이미 꽤 완성되어있는 집들 사이에서, 말로만 듣던 하이옌의 참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베이스캠프를 차린 단원들은 이날부터 일정이 끝나는 날까지 매일 집을 지었다.

 


찌는 더위와 건물의 벽마저 뚫어버릴 듯한 태양아래서 삽을 들고, 포대로 흙을 담고,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섞고, 음악을 듣고, 땀을 흘리고, 철사를 구부리고, 물을 마시고, 다시 삽을 들고. 낯설고 고된 노동의 현장에 점점 익숙해져 언젠가부터 왜 우리가 이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조차 희미해질 무렵, 한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재난 속에 집을 잃었던 리타

 

그녀의 이름은 리타. 13년 재난의 현장 한가운데서 집을 잃은 여인이다. 그녀는 하이옌이 반타얀에 몰아치기 직전 근처의 대피소로 피신했다. 당시 그녀가 할 수 있던 유일한 것은 9개월 된 딸을 껴안으며 자연의 무자비함 아래 신에게 기도하던 것이었다고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 그녀의 삶의 흔적도 태풍을 따라 사라졌을 때, 끝없는 절망과 어둠만이 남았을 때, 해비타트는 한줄기 빛이었다. 블루하우스라는 임시거처에 거주하며 해비타트의 일손을 돕던 그녀는 마침내 14년 12월 그녀의 튼튼한 집을 갖게 되었다. 잠시 방문한 그녀의 집에서 가족들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비로소 한 가정이 자연의 재앙을 피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단원들의 역할, 고통의 지속을 줄이는 것

 

리타와 같이 삶의 터전을 회복한 사람의 수 만큼이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집을 되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여전히 블루하우스에 거주하며 공사에 힘을 보태며 살아간다. 공사현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연히 그들이 말하는 블루하우스를 지난 적이 있다. 푸른 판자를 덧대 직육면체의 형체를 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임시 거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흙바닥위에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란 뒹굴고 있는 바가지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무 막대기가 전부였다. 누군가는 그곳을 칭해 임시 집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기본적인 거주환경도 없이 그저 잠깐의 비바람만 막아주는 그곳을 과연 집이라 할 수 있을까.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이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눈으로, 피부로, 온 감각으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집이라 칭하기도 민망한 그들의 블루하우스는 단원들의 공사현장과 총 쏘면 맞을 거리만큼 가까웠고, 그 만큼 그들의 고통과 불행 또한 가까이 있었다. 단원들의 역할은 그 고통의 지속을 줄이는 것이었다.

 


친구가 되어가는 시간

 

  

총 열흘의 기간 동안, 하루는 근처의 초등학교를 방문해 출국 전부터 기획했던 교육봉사를 진행하였다. 공사를 쉬는 일요일에는 반타얀 시내를 둘러보며 동굴에서 수영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하루는 공사현장에서 만난 일본 해비타트 단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반타얀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에는 현지 주민들과 함께 둘러 모여 그들의 전통음식을 먹었다.

 

또한 그 동안의 활동을 기념하고 단원들의 노력이 보태진 집에서 현지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헌정식을 가졌다. 단원들은 그 곳에서 열흘간 열심히 연습한 춤과 노래를 현지 주민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답례로 단원들에게 K-Pop의 춤을 보여주었다. 헌정식의 끝에서 해비타트 관계자는 단원들이 6채 가량의 집을 지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공식적인 모든 일정이 끝났다.

  

그날 밤 마지막 평가회의에서 단원들의 다양한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건축봉사를 통해 멀리 떨어져있는 이국의 사람들과 우리가 완전히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닌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단원, 이번 활동이 단순히 집을 짓는 활동을 넘어서 현지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정을 나누는 데도 의미가 있다고 했던 단원,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러워 펑펑 울던 단원, 배가 고프다고 피자를 더 시켜달라던 단원.

서울대-해비타트 봉사단의 활동이 단원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저마다의 가슴속에 새겨진 상들은 다르겠지만, 단원들이 현지인들에게 주었던 따듯한 손길만큼이나 따듯한 무언가를 얻어갔기를 바란다.


(글로벌사회공헌단 = 김성완 소셜 에디터)